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게시물 (19건)
- 김대현 -무등산 한시 111편
- 무등산한시선무등산에 대한 한시를 옛 문헌 속에서 찾아내어, 시대 순으로 편집하고 번역한 책이다. 우리나라 스물 두 번 째 국립공원인 무등산은 남쪽 지방의 대표적인 명산으로, 예로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탐방하고 있다. 고려시대 대각국사 의천의 시문집에서부터 현대 의재 허백련의 시문집에 이르기까지, 수많은 옛 문
- 고재화(高在華)
- 고재화(高在華, 1881~1948)의 본관은 장흥이다. 자는 성관(聖觀) 이고 호는 송곡(松谷) 이다. 남구 압촌동에 거주하였다.부 : 高光祿생부 : 高光壽조 : 高炳柱증조 : 高濟應외조 : 朴源國1929년 나도규羅燾圭 문인들의 소의계에 참여하였다.
- 고재련(高在鍊)
- 고재련(高在鍊, 1892~?)의 본관은 장흥이다. 자는 연술(鍊述) , 호는 후봉(後峰) 이다. 광주 니장동에 거주하였다.부 : 高光龍조 : 高榮柱증조 : 高濟鎰외조 : 李采柱처부1 : 金堯翊향교전교鄕校典敎를 지냈다. 1929년 나도규羅燾圭 문인들의 소의계契에 참여하였다.
- 고규상(高奎相)
- 고규상(高奎相, 1878~1959)의 본관은 장흥이며 자는 윤화(允和), 호는 덕봉(德峰) 이다. 남구 니장동에 거주하였다.부 : 高濟國조 : 高宜鎭증조 : 高時興외조 : 昌寧 曺처부1 : 李謙緖 1929년 나도규羅燾圭 문인들의 契에 참여하였다.
- 고광준(高光俊)
- 고광준(高光俊, 1853~1939)의 본관은 장흥이며 자는 치삼(致三), 호는 인암(忍菴) 이다. 남구 양과동에 거주했다.부 : 高儀相조 : 高濟憲증조 : 高厚民외조 : 朴齊莞처부1 : 尹柱興 1929년 나도규羅燾圭 문인들의 소의계昭義契에 참여하였다.
- 용진정사 湧珍精舍
- 광산구 본량동 서로 180-68 해발349m의 용진산 남쪽 깊숙한 골짜기에 자리한 용진정사는 한말의 대학자이며 우국지사이기도 한 후석 오준선(1851∼1931)이 국난과 세상의 티끌을 피해 숨어살면서 후진을 가르친 곳이다. 1985년 광주시 문화재 자료 제7호로 지정되었다.원래 용진사(湧珍寺 상원사)가 자리 잡았던 절
- 봉산정사 鳳山精舍 엄이재 掩耳齋
- 서구 용두동 산 79번지 서구 용두동 봉학마을 깊숙한 꽤 높은 곳 봉황산 가파른 중턱에는 한 지식인이 시대적 아픔에 어쩌지 못하고 읍궁암泣弓菴에서 울분을 삭히며 세상을 마감했던 유서 깊은 흔적이 있다. 광주읍지(1924)에는 주의 서쪽 30리의 거리인 봉황산에 위치해 있다.주변에 큰 은행나무가 자리하고 봉산
- 남덕정 覽德亭
- 남구 석정동 120 석정동 출신의 나주나씨 지재 나창을 선조로 1881년 덕암德巖 나도규羅燾圭(1826-1885)가 건립한 휴양 겸 강학소인 초가이다. 광주읍지(1924)에는 주의 서쪽 30리에 있다. 마을 북쪽 길로 가다보면 왼쪽 모퉁이에 남덕정이 자리하고 있다. 현와 고광선 등에게 성리학과 도덕을 전수하여 수많은 인
- 나도규(羅燾圭)
- 나도규羅燾圭(1826~1885)의 본관은 나주이다. 자는 경문(敬文)이고 호는 덕암(德巖)이다. 당시 계촌면에 살았는데 오늘날 남구 석정동에 해당한다.부 : 羅禧集조 : 羅錫曾증조 : 羅弼殷처부1 : 李鉉臨노사 기정진에게 수학하였고 1880년 노사선생 襄禮 때 참석하였다.1880년 3월 25일에 奇陽衍에게 편지를 보냈다. 1883년 1
- 유치선선정비
- 광주시유치선(兪致善)은 1880~1883 광주목사로 재임했다.나도규의 <덕암집>에 비문이 실려 있다.
- 남호원선정비
- 광주시남호원(南鎬元)은 1875~1879에 광주목사로 재임했다.나도규의 <덕암집>에 비문이 실려 있다.
- 김재헌 선정비
- 광주시김재헌(⾦在獻) 선정비는 1856~1858 광주목사로 재임한 뒤 세워진 것이다. 김재헌은 본관이 광산이고 사계 김장생의 이손(⽿孫, 7대손)이라고 한다. 병진년(1856년)에 부임해 오자마자 향교 흥학전, 교량 수보전, 사창 진휼곡 등을 마련했다. 광주 사림들이 비석을 세울 것을 결의했는데, 이 비문 작성 시기는 재임 중
- 나도규-무등산
- 아스라히 떠 있는 티끌 산 기슭을 덮고 있고높이 솟은 기암괴석 산봉우리를 옹위하고 있네활달한 마음 열려 속마음을 얻으니가소롭다 시객(詩客)들아! 시짓는 일일랑 거두어라- 서석록(瑞石錄 德巖漫錄),
- 나도규-月小樓詩會 金侯在獻 以四韻要和敬次
- ‘월소루 시회에서 김재헌이 사운으로 화답하기를 청하여 삼가 이어서 짓다(月小樓詩會 金侯在獻 以四韻要和敬次)’登堂絲肉滿庭喧 당에 오르니 사육이 뜰에 떠들썩今日優逰屬藝垣 오늘 마침 예원에서 즐겁게 노니네三代儒冠高會席 삼대의 유관이 높게 자리에 모여서十分春色細傾鐏 흐드러진 봄빛에 술잔을 기울이네清歌酒後爲
- 나도규-製錦樓卽事 此篇於和金候六律中
- 製錦軒高坐 제금루 헌창에 곧게 앉으니天際滿斜陽 하늘 끝에 석양빛이 가득羽籥伶人奏 악공은 피리를 연주하고蟬衫小妓粧 얇은 옷 어린 기녀는 단장하네 月臺濃夜色 달빛 누대에 밤빛이 짙고蘭谷浥秋香 난초 골짝은 가을 향기에 젖었네媿我功名計 부끄럽다 나의 공명의 계책이여一生自傯忙 일생을 스스로 바쁘게만 보냈네
- 나도규-和東軒韻別柳參奉 名未詳(동헌의 시운에 화답하여 유참봉과 이별하다. 이름은 미상)
- 一生書釼客 일생을 서검으로 살아온 나그네自是惜流光 스스로 흐르는 세월이 아쉽구나詩語樽前好 시어는 술 단지 앞이라 좋고秋聲雨後長 가을 소리는 비온 뒤에 유장하다盛衰元有數 성쇠는 원래 운수가 있으니離合亦無傷 만남과 이별도 슬퍼할 것 없어라來日如今日 내일도 오늘과 같이淸遊更一床 맑은 놀이 마치고 함께 지새
- 읍궁암(눈물바위)의 푸른 이끼
- 서구 용두동 봉학마을에는 읍궁암泣弓巖이 있어요. 엄이재掩耳齎 뒤편에 있는 푸른 이끼가 낀 바위를 말합니다. 이 엄이재는 한말 유학자이자 깨어있는 지식인으로 평가받는 현와弦窩 고광선高光善(1855∼1934) 선생이 1905년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세상과의 인연을 끊고 봉황산鳳凰山에 들어가 은거하면서 후학을 양성
- 봉황산
- 서구 용두동과 남구 압촌동광주 무등산에서 서쪽으로 뻗어내린 산줄기는 수레바위산 - 소룡봉 - 분적산 - 금당산을 지나 화방산 - 송학산 - 봉황산 - 등룡산으로 이어지다가 승촌에서 영산강을 만나 끝을 맺는데 그중에 봉황산은 167.8m이다. 서창과 대촌의 중간에 있으면서 눌재로를 사이에 두고 송학산과 마주보는 산이다.
- 봉산사
- 광주시 서구 용두동 산 79번지서구 용두동 봉학마을 깊숙한 꽤 높은 곳 봉황산 가파른 중턱에 봉산사가 있었다. 이곳은 을사늑약 이후 어지러운 세상에 그만 ‘귀를 닫아버리고[掩耳]’ 싶었다고 해서 ‘가리다, 숨기다’의 엄(掩)자를 쓴 엄이재 띠집을 짓고 후학을 가르친 현와 고광선이 지낸 곳이다.주변 숲속에 읍궁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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